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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오세요, 우리집에!

Come Over To My House!

 안녕하세요 저는 집을 그리는 김래현 작가입니다.

다른 이들의 가족 이야기를 인터뷰해서 집이라는 공간에 빗대어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 <놀러오세요,  우리 집에>는 팬데믹 이후 도래한 핵개인의 시대 모습 속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지켜주는 집은 전염병에서 보호해주는 역할과 동시에 개인의 고립과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 특히 가족과의 기억과 감정, 사건들을 인터뷰 하여 해체된 집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집의 정의를 새워보려고 합니다. 

 작품을 만나는 여러분에게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길 바랍니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나 만을 위한 곳이 아닌 관계를 위한 공간임을 느끼며, 오직 사람과의 관계 뿐 아니라 쌓아온 기억, 감정,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우리를 안고 있는 공간과 환경을 포함해 새로운 정의를 찾아보세요. 

 

 이 페이지는 전시 <놀러오세요, 우리 집에> 담긴 이야기들을 인터뷰 내용과 함께 관람하실 수 있도록 관람 순서에 따라 구성해 보았습니다.  인터뷰는 대상과 나누었던 대화 그대로 전하기도하고 그날의 감상과 내용을 적은 수필의 형식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야기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시며 ‘우리 집’ 에 대한 질문에 답, 그리고 새로운 집의 정의에 대한 답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내 집 마련 프로젝트 (아이폰 이모지 ver) 린넨에 동양채색 31.8x31.8cm 2023 , 10pcs

 <내 집 마련 프로젝트 _ 아이폰 이모지 버전>은 인터뷰 대상이 가장 많이 사용한 이모지를 수집했다.  입체로 조립한다면 손바닥에 올릴 수 있는 작은 집의 평면 도안과 함께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정, 동물, 식물, 행동, 음식 등 최근에 사용했거나 사용 빈도가 많아 즐겨찾는 이모지에 등록된 조합 선정했다.  그들의 핸드폰 또는 SNS 프로필에 있는 캐릭터 등을 함께 배치해 가상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던 그들의 취향과 상태를 반영한다.  팬데믹 이후 현실 세계보다 가상의 공간이 친숙해진 인류의 '내 집'은 가상의 안식처에서 사용하는 이모지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내 집'을 분양하기로 한다.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10명의 이상적인 집을 짓고 그들의 평소 관심사와 현재 상태,  자주 사용하는 말 들을 유추 할 수 있다.  이들의 직업이나 상태를 추측하며 작품을 관람하길 바란다. 

​화살표를 눌러 다음 작품들을 관람하세요.

내 집 마련 프로젝트 (한옥과 고무나무) 린넨에 동양채색 60.6x60.6cm 2022

내 집 마련 프로젝트 (포키와 하리보) 린넨에 동양채색 60.6x60.6cm 2023

내 집 마련 프로젝트 (짱구네 집) 린넨에 동양채색 60.6x60.6cm 2023

내 집 마련 프로젝트 (올드카와 러버덕) 린넨에 동양채색 60.6x60.6cm 2023

내 집 마련 프로젝트 (튤립과 테디베어) 린넨에 동양채색 60.6x60.6c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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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구네 집 인터뷰 중>

H : 5살에게 취향은 맹목적이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 아들이 짱구가 될 수는 없잖아요..

H는 5살 난 귀여운 아들의 맹목적인 취향에 볼멘 소리를 했다.  아들의 애칭은 짱구, 쏟아지는 볼과 진한 눈썹 덕에 귀여운 별명을 얻었다. 몇 번 보여준 짱구 만화와 심취한 아이는 과자를 고를 때도 초코 맛, 흰 강아지를 보면 집에 데려가려고 떼를 쓴다.  애니메이션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엉뚱한 짱구의 모습이 아들이 되고 있다. H에게 필요한 집은 흰둥이 이름을 가진 구름 모양 강아지, 초코 맛 과자가 있는 만화 속 도쿄 외곽의 짱구네 집이었다. 

<올드카와 러버덕 인터뷰 중>

K :  붉은 벽돌 집에 로망이 있어요.  삼청동에 아내와 자주가던 오래 된 만두 가게가 붉은 벽돌 집이었는데,  참 로맨틱해 보이더라고요.  벽돌 집 앞에 드림카가 주차 되어있으면 좋겠고,  그 집 근처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가 있고... 또.. 아기가 좋아하는 것도 넣었으면 하는데, 목욕할 때 띄워 놓는 오리요! .. 저는 자동차 얘기해 놓고 조금 양심이 없는 거 같은데..

K는 이후에 화려한 장식이 있는 구두와 기린 스툴로 바꾸어 달라고 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꿈꾸는 집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으로 만들어졌다. '앞으로 살고 싶은 꿈꾸는 집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또 그 안에는 어떤 것으로 채우고 싶으신가요? '의 답은 오직 본인을 위한 선택에서 점점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을 위한 선택으로 번져간다. 나를 위한 나무 의자, 꿈꾸던 빈티지 자동차에서 아내를 위한 튤립과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반려 동물과  양지를 지키는 작은 식물들을 위한 선택으로 번져간다.  꿈 꾸는 집은 지금의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고찰로 확장한다. 그들의 꿈꾸는 이상적 공간은 종이 접기 도안의 형태를 가지고 조립의 가이드를 제안한다. 

내 집 마련 프로젝트(간편 조립형 가옥) 린넨에 동양채색 각 40x32cm 2023 2pcs 

내 집 마련 프로젝트(간편 조립형 가옥) 린넨에 동양채색 각 41x32cm 2023 2p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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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편 조립형 가옥>은 오려 접으면 입체의 작은 집을 만들 수 있는 도안과 문, 창문, 가구 등 다양한 조합을 상상할 수 있는 연작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집의 모형을 그림을 오려 접어 손 안의 작은 집과 함께 그 안에 들어가는 것들을 선택한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어려가지 역할과 관계를 고려하며 조립을 상상할 수 있다.  

원하는 가구를 고객의 취향에 맞게 조합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듈 가구처럼 취향에 맞는 선택으로 이상적인 내 취향의 집을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선택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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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프로젝트(아이폰 이모지 ver) 린넨에 동양채색 원형 40cm  2023

내 집 마련 프로젝트(관음죽) 린넨에 동양채색  원형23cm 2023

​내 집 마련 프로젝트(고무동력기와 테니스볼) 린넨에 동양채색 32x32cm 2022

내 집 마련 프로젝트 시리즈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집을 상상할 수 있는 작품의 연작이다. 화면을 오려 조합하면 작은 집을 만들 수 있는 도면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 안에 들어갈 가구, 소품, 반려 동물을 배치한다. 어린 시절 신중하게 오려 붙여 만들었던 종이 인형 놀이의 이미지를 빌려, 변형이 가능한 ‘집’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제안한다. 관람자에게 안식과 보호의 감정적인 의미보다 ‘재산, 재물’의 의미가 강해진 ‘집의 소유’에 대해, 또 자신의 이상적인 나, 관계, 공간을 조립하며 여러 가지 선택은 나를 이루고 있는 실제를 찾으며 여러 감정을 포함한 유토피아를 이룬다.

​<아이폰 이모지 ver>은 줄여서 <이모zip>이라고도 부른다.  이모지와 압축 포맷 zip 의 합성어이다.  zip은 여러 개의 파일을 압축해 하나의 파일로 만들기 위한 컨테이너 포맷인데 '집'과 동음어로 이모지의 여러 모음과, 이모지로 구성된 집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지었다. 작품의 대상은 작가 본인의 즐겨 찾는 이모지로,한동안 여름 앓이를 했고 스쿠터에 대한 고민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관음죽> 은 작업실 이사를 축하하며 작가의 아버지가 심어다 주신 화초를 종이 인형 이미지로 만들었다. 이사한 작업실은 해가 들어오는 반 지하의 상가였는데, 제일 양지 바른 자리에 넉넉하게 물을 주며 키웠다.  너무 진한 애정을 쏟으면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노랗게 타기 시작한 관음죽은 다음 작업실 이사까지 버티지 못했고 그림으로 다시 싹을 피웠다. 

<고무동력기와  테니스 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임과 한 백 년 살고 싶다는 유명 노래 가사의 구절처럼 그림 같은 집을 둘 저 푸른 초원이 필요했다.  꿈 꾸는 집에 대한 질문과 함께 살고 싶은 배경, 환경에 대한 답에 작가는 초원과 낮은 산이 보이는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자 한다. 

그곳에 가면(일산 고양시 아파트) 한지에 흑연과 동양채색 90.9x60.6cm 2022

<그 곳에 가면 (일산 고양시 아파트)  L의 인터뷰>

R : 외동딸로 지낸 어린 시절은 어떤가요?  

L : 같은 아파트의 또래 아이들이 함께 컸어요. 외동이라 느낄 새가 없었죠.  아이 하나를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처럼 위층 아래층 할 거 없이 함께 지냈고 복도식 아파트는 항상 문이 열려있었죠. 그때는 학교 갔다가 집 문이 잠겨있으면 자연스럽게 윗 집 아랫 집에 가서 요구르트를 얻어먹기도 하고 그 집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다들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저는 외동이지만 어린 시절에 한 번도 혼자 지내본 적이 없어요. 아래층 언니가 한 살, 위층 아이가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었고 그 아이의 동생은 모두의 막내였거든요. 그때는 매일 아파트 입구에 쪼르르 앉아 요구르트 엉덩이를 이로 까먹던 날들이 당연했었습니다.

 얼마 전 이사한 복도식 오피스텔에는 문을 열어 놓으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마다 그 집안의 라디오, TV소리가 흘러나오면 왠지 마음이 놓입니다.  가끔 귤 하나를 주시기도 하고, 저도 수박을 사면 나눠 드리기도 하구요. 

고요한 저녁(서초구 내곡동 주택) 광목에 동양채색 60.6x90.9cm 2022

<고요한 저녁(서초구 내곡동 주택) N의 인터뷰>

 

N : 가족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오랫동안 보살펴 온 반려 식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부모님과 형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평생을 북적북적, 밥그릇에 반찬이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낸 날보다 적막하게 기다리는 지금이 편안합니다.

식물도  낮 동안은 해를 보고 광합성하고 바쁘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구나, 하고 왠지 위안이 되기도 하구요. 

아침에 일어나면 헐레벌떡 나갈 준비하면서도 저녁 내 숨이 죽었던 반려 식물과 물 한 잔을 나누어 마시고  커튼을 열어두고 나와요, 

 어디서 봤는데, 해가 뜨는 남동향의 볕이 맞는 사람이 있고 지는 해의 남서향이 맞는 사람이 있대요.  일조량은 체감상 남서향이 길다고 느껴지지만, 저는 왠지 아침 해가 긴 남동향이 맞는 사람인 걸 보니 식물들이랑 살다가 신체 리듬도 그렇게 바뀌었나 봐요.  

인터뷰를 마치고 이름 모를 화초를 작은 화분에 심어 선물했다.

  N은 꽤 반기며 식물의 이름은 아스파라거스, 꽃말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알려주었다. 

향기가 흐르는 낮(강릉시 송정동 빌라) 린넨에 동양채색과 흑연_116.8x91.1cm 2023

<향기가 흐르는 낮_강릉시 송정동 빌라 P의 인터뷰>

 

P :  강릉에서 살았다고 하면 보통 바다가 보이는 집을 생각하곤 해요. 저희 집은 더군다나 송정해변이 근처에 있는 동네였는데,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꽤 있는 동네였어요.  작은 한약국을 하던 우리 집은 창호지 문을 사이에 두고 집과 약국을 나눠놓고 살았습니다.   제 방이라고 만들어주신 작은 창고는 바다의 꼬리가 아주 조금 보였고 양국의 창에는 건물들 사이로 작게 산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나른한 오후, 천천히 집에 돌아오는 길에 멀리에서도 어머니의 홍차 향기가 납니다.   학교가 끝날 즈음이면 창가의 오래된 의자에 앉아 홍차를 내리고, 골목 앞에선 금세 따듯하고 달큼한 냄새로 가득하곤 했어요. 

따듯한 홍차.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어린 딸의 하굣길을 데리러 와주시는 엄마만의 방법이었죠. 

우리 집은 차로 5분이면 솔나무가 가득한 바다에 갈 수 있었지만 유난히 어머니는 바다를 등지고 창밖으로 먼 산을 바라보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쉬이 오르기 쉽지 않던 창밖의 산을 바라보며 가끔은 먹으로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시고 시를 쓰기도 하셨고요.  윤기 나는 벨벳 의자에 앉아 취미이자 전부였던 그림과 글을 쓰고 찬찬히 오늘의 계절을 상상하곤  하셨겠죠. 

낙조와 모과나무(안산시 선감동 빌라) 한지에 흑연과 채색_91x91cm 2022

나와 S는 늦지 않은 오후 창이 큰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아이들의 공부방을 운영하는 30대의 S는 작은 초등 분교 앞에서 가족과 함께 브 -이 하고 찍은 앞니 빠진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S는 아버지가 가지고 오던 상처가 많은 모과 열매를 떠올린다. 학교 선생님이던 아버지는 어느 계절 즈음이 되면  모과 열매를 가득 안고 귀가하셨는데, 그 계절이 되면  열매의 향긋한 내음이 아버지보다 먼저 현관을 들어왔다.

큰 모과나무 그늘에 주차를 하고 집에 갈 때면 조금 못나고 헐었지만 잘 익어 향이 뭉클한 것으로 골라 담았다. 

모과는 한동안 집안을 달큼한 향으로 채우다가 주말이면 가족이 둘러앉아 설탕에 절인 청으로 만들어졌다.

단단한 과육을 힘주어 자르는 것은 부모님이,  남매는 번갈아가며 설탕을 가득 넣는 노동을 맡았다. 

S가 유년 시절을 보낸 안산시 선감동은 노을로 유명한 탄도항을 낀 작은 마을이다.  해가 짧아지고 옷이 점점 두꺼워질 때 즘, 어떤 거리에 모과향이 나면 꼭 뒤를 돌아보며 이가 나가 버리는 책걸상을 주워다가 남매의 작은 공부방을 만들어주던  아버지를 기다리는 탄도항의 노을을 그리워한다. 

남은 것에 대하여 (서울 만리동 주택) 한지에 흑연과 동양채색 162x97cm 2023

<남은 것에 대하여_ 서울 만리동 주택 C의 인터뷰>

R: 기억에 남던 가구나 물건이 있을까요? 유난하게 애착이 가는 그건 것.

C: 어릴 때는 그런 게 있잖아요? 친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보이던. 나이가 엇비슷했던 동네 아이가 바퀴 달린 말 장난감을 타고 등장했을 때, 어린 마음에 그 말 장난감이 드림카가 되어버렸어요. 얼마나 아른거렸는지, 매일 혼자 남은 집에서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고 의자에서 의자까지 건너 놀았더랬죠. 하루는 고등학생이던 큰 누나가 색이 벗겨진 낡은 목마를 얻어왔습니다. 주말 하루를 꼬박 붙어 앉아 물감을 칠하고 스티커를 붙여서는.. 그 선물이 얼마나 좋았는지, 온 일기가 조랑말 슝슝이 이야기뿐이었죠.

큰 누나와 저는 만리동에서 사시던 조부모님 댁에 살게 되었는데 아마 형편이 어려워 온 가족이 흩어 지낸 게 아닐까 싶어요. 이후에도 온 식구가 함께 살았던 기억은 없는걸 보니.

얼떨결에 하게 된 서울살이는 적적하고 외로웠다고 할까요? 가게를 하시던 조부모님은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시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보호자로 같이 온 큰 누나였는데, 사실 누나도 고작 열일곱에 어린애 아닙니까. 그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 줄 곳이라고는 슝슝이라 느꼈는데, 사실은 누님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유년 시절을 만리동 시장 골목에서 보냈던 C는 인터뷰 후, 어린 시절 그린 작품을 보여주었다. 주제는 분명 우리 집 그리기였는데,  화려하게 무늬를 낸 집에 조랑말 슝슝이가 나오는 그림이었다.  조부모님과 누나를 함게 그릴 생각도 했지만 왠지 집에 함께 집에 있는 것은 장난감 말 뿐이었다고. 

작품의 배경에는 C가 어린 시절 그린 빗 바랜  작품에 색을 덧입혀 배치하였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 (성남 백현동 주택) 한지에 흑연과 채색 130.3x97cm 2022

P: 조금 놀라긴 했었죠. 어머니께서 직접 전화하신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누가 내 그림을 그려줬는데, 전시회를 하니 한국에 들어올 수 있으면 한번 보렴 하셨어요. 생전 한국에 들어와 보렴 하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P는 2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20대의 푸른 청춘에 떠났던 한국에 50세가 되어 다시 밟아본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P와 그의 어머니는 설명 없이도 어머니의 집 앞에서 오랜 시간 그림을 보았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_ 성남 백현동 주택 P의 인터뷰>

P: 미국에서는 작은 음식점을 하다가 잠깐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반짝했던 식당은 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어려워졌고, 이후에는 호텔 청소를 하거나 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하는 일도 하고, 그때 알게 된 사람들과 방을 쉐어하며 지냈죠. 어떤 날은 방 안에 채 풀지 않은 짐들과 낚은 매트리스 하나를 보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혼자 울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또 일 년, 또 일 년 하루하루 버티며 살다가 보니 지금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남들 부럽지 않게 살게됬습니다. 돌아보니까 23년이나 지났네요.  

거의 일생의 반을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집으로 가면 다시 미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던 게 아닐까요.  

가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백합을 한 단 사서 잠자리 맡에 두곤 했는데,  그때는 유일하게 가족을 그리워 할  수 있는 행위였어요.

2015년에 제작한 <완전한 집> 연작 중 궂은 날을 제외하고 공원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노부인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한 작품이 있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미국에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했다.  완성된 작품이 처음 전시가 되는 날, 어머니와 아들은 함께 전시장에서 그림을 관람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아들은 23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있는 성남의 도시로 이사 후 그녀의 기다림을 그린 작품을 거실에 걸었다.  오랜  타지 생활은 외로웠고 그가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백꽃을 침실에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작품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한 쪽방은 P의 미국 생활 중의 환경으로 단출한 매트리스에 홑이불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가 사다 놓은 백합을 두었다. 다른 방에는 어머니 곁으로 이사한 그의 한국 생활의 방이다. 마주 보고 앉은 의자와 의자 옆에는 노란색의 집 그림 하나가 기대어져 있다. 이 그림은 실제 2015년도 <완전한 집> 시리즈 중 그의 어머니의 인터뷰를 토대로 제작한 그림이다.

​완전한 집 한지에 흑연과 채색 90.9x72.7cm 2015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 린넨에 동양채색  130*130cm 2023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 가변 설치 1600*1200cm 2023 

이상적인 도피처를 찾아서. 

 

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렸다. 

몇 년간의 팬데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왔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돌아갈 집이 사라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작업을 이어 하느라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주말 동안 여행을 다녀왔기에 배낭 안에는 여분의 옷가지와 가벼운 짐이 있었다.  여기저기 신세를 지며 격리 기간을 버티다 돌아온 집은 25년간 살아온 작은 내 방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색하게 빳빳한 침대에 누워  sns에 들어갔다. 

집 이모티콘을 하나 올리고 진짜 집에 돌아왔다고 느껴졌다.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는 팬데믹 이후 생긴 인류의 공통적인 주거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인류는 역병을 피해 집에 자의적 감금을 경험하며 SNS와 가상세계로 주거지를 옮겼다.  핸드폰 속의 삶을 꾸미고 가꾸며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생활한다.  국경의 경계를 넘은 가상세계의 언어는 이모지로 통일되었다. 

<놀러 오세요, 우리 집에>는 휴대폰 이모지의 '집' 이미지를 가지고 현대인의 가상 안식처의 성격을 대변하려 한다. 소유하지만 실존하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어디에도 있고 어디든 없어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통용되는 집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거주할 수 없다. SNS와 대화 창의 이모지 성격처럼 이 집은 원하는 곳에 설치하고 이동 할 수 있으며 해체하여 보관했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상 공간의 안식처는 그 성격을 가지며 실제로 존재하며 휴대용 안식처의 기능을 한다. 

동명의 회화 작업은 입체로 구현된 이모지의 집을 해체하여 전개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오랜 밤길을 걷고서(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광목에 먹과 동양채색 130.3x80.3cm 2023

<오랜 밤길을 걷고서_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J의 인터뷰>

 9월의 저녁은 아직 후덥했다.  초 가을의 시작은 벌써 긴 셔츠를 꺼내 입었지만 가방이 닿은 등은 더웠다.  J를 만난 건 퇴근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울 서초의 공유 오피스였다.  J 역시 등에 맨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으며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87년도 9월 제주의 바다에서> 라 쓰여진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으로 시작된 오랜만의 가족 여행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J의 동생은 군을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 모두가 성인이 되고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다.  항상 이끌려 다니던 대상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여행은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난관이었고  제주에서 군복무를 한 동생의 경험과 우연히 발견한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으로 제주로 떠나기로 했다.

제주에서 만난 부모님은 J가 '알고 있다고'생각한 분들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신맛의 커피보다 톡 쏘는 에이드를 좋아하셨고, 오랜 시간 기자로 일하신 아버지는 여행 가방에 시집과 사진집을 챙기셨다.   관광지를 돌거나 체험을 하는 것보다 숙소 앞의 작은 바다에 의자를 펴고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노을을 보고 밤이 다가오는 것을 잔잔하게 살피는 것을 좋아하셨다. 36년간 내가 보고 자라왔던 내 부모의 모습은 마치 상상 속의 모습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

어느 날 부모님은 베란다 테라스에 캠핑 의자를 두셨다. 22년 9월 제주의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빌딩 사이로 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그날을 추억하기로 했다.

제주 바다에서 보낸 가족과의 기억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작업한 <오랜 밤길을 걷고서>는 가족과의 여행 중에 느꼈던 따듯함, 생경함을 도심의 집안으로 그날의 바닷가를 데려왔다. 자연 안에서 색을 찾은 휴양 의자와 아버지의 시집, 어머니의 모자는 그 날의 기억에 가족들의 온기를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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